from John
9月30日10時35分、転換試験棟で警報。11時15分、臨界事故の可能性ありとの第一報がJCOから科学技術庁に入る。そして11時52分に被曝した作業員3名を搬送するため救急車が出動した。東海村から住民に対する屋内退避の呼びかけの広報が始まったのは、12時30分からである。なお、この広報に関しては東海村の村上達也村長(当時)が、国・県の対応を待たず独断で行った。
12時40分頃、内閣総理大臣・小渕恵三(当時)に事故の第一報が報告される。現地では事故現場から半径350m以内の住民約40世帯への避難要請、500m以内の住民への避難勧告、10km以内の住民10万世帯(約31万人)への屋内退避および換気装置停止の呼びかけ、現場周辺の県道、国道、常磐自動車道の閉鎖、JR東日本の常磐線水戸 - 日立間、水郡線水戸 - 常陸大子・常陸太田間の運転見合わせ、陸上自衛隊への災害派遣要請といった措置がとられた。
JCO職員は事故当初、誰も止める作業をしなかったが、「あなた達でやらなければ強制作業命令を出した後に、結果的にする事になる」と国からの代理人に促された結果、「うちが起こした事故はうちで処理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同社社員らが18人を2人1組で1分を限度に現場に向かい、アルゴンガスを注入して冷却水を抜く、ホウ酸を投入するなどの作業を行い、連鎖反応を止めることに成功して事故は終息した。中性子線量が検出限界以下になったのが確認されたのは、臨界状態の開始から20時間経った翌10月1日の6時30分頃だった。
The second and more serious Tokaimura nuclear accident (Japanese: Tōkai-mura JCO-rinkai-jiko) indicates the nuclear disaster which occurred on 30 September 1999, resulting in two deaths. It was the worst civilian nuclear radiation accident in Japan prior to the Fukushima Daiichi nuclear disaster of 2011.
The criticality accident occurred in an uranium reprocessing facility operated by JCO (formerly Japan Nuclear Fuel Conversion Co.), a subsidiary of Sumitomo Metal Mining Co. in the village of Tōkai, Naka District, Ibaraki Prefecture.
The accident occurred as three workers, Hisashi Ouchi, Masato Shinohara, and Yutaka Yokokawa, were preparing a small batch of fuel for the Jōyō experimental fast breeder reactor, using uranium enriched to 18.8% with the fissile radionuclide (radioisotope) known as U‑235 (with the remainder being the fissionable-only U‑238). It was JCO's first batch of fuel for that reactor in three years, and no proper qualification and training requirements appear to have been established to prepare those workers for the job. At around 10:35 a.m., a precipitation tank reached critical mass when its fill level, containing about 16 kilograms of uranium, reached about 40 liters (about 35 pounds and 11 US gallons respectively).
원전 연료로 쓰이는 우라늄을 가공 처리하는 민간업체 JCO 도카이 사업소는 작업 속도에 집착, 정상적인 제조법을 무시하고 4년 전부터 자체 작업 지침서를 편법으로 만들어 우라늄을 가공해왔다. 우라늄 용액은 용해탑 저장탑 침전용 탱크를 거치면서 농도와 양을 철저히 관리하도록 되어있으나, 스테인레스 용기에서 수작업으로 우라늄 분말과 질산을 배합, 이 용액을 침전용 탱크에 그대로 주입했다. 이 과정에서 통상치(2.4kg)의 7배(16kg) 정도를 침전용 탱크에 주입했다. 직원은 “파란 불꽃이 이는 것을 보았고, 그 순간부터 기분이 나빠졌다”고 밝혔다. 방사선에 노출된 작업원 3명 중 2명은 신출내기였다. JCO의 전환 시험동에서 데스크 작업을 시작하려하던 요코카와 유타카(당시 54세)는 얇은 벽이 하나 있는 작업실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창백하게 빛나는 푸른 빛을 보았다. 그 방에는 시노하라 마사토(당시 39세)와 오오우치 히사시(당시 35세)가 작업하고 있었다. 임계경보가 울리는 것을 듣고 요코카와는 “임계다 나와라”라고 외쳤다.
정부와 이바라키 현은 11시 33분 사고 후 1시간이 지난 후에야 공장 주변에서 규정치의 2만배 가까운 방사선이 누출되는 상황에서 “현장 작업원이 방사선에 좀 노출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방사선 노출연락을 받지 못한 소방본부 구조대는 방호복도 입지 않고 출동하는 바람에 구조대원 중 3명이 피폭자가 되었다. 이후 우라늄 용액을 양동이로 퍼부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일본의 안전신화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